애덤스미스의 국부론 中

노동자는 가능한 많이 받기를 원하며,

고용주는 가능한 적게 주기를 원한다.

노동자는 노동임금을 올리기 위해 단합하는 경향이 있고,

고용주는 노동임금을 낮추기 위해 단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보통의 경우 쌍방 중 어느쪽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의 조건에 따르게 할 수 있는지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고용주들은 수적으로 더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연합할 수 있으며, 또한 법률과 정부기관은

고용주들의 연합은 인정해 주거나 적어도 금지하지 않지만,

노동자들의 단합은 금지하고 있다.

 

노동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고용주들이' 연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회 법률은 하나도 없지만,

노동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단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회 법률은 많이 있다.


구독하고 있는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이런게 날라왔다.

저 글귀를 읽어면서 한참이나 곱씹어 보았고, 예나 지금이나 각자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사정은

별로 나아진게 없어 보인다.

최근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을 봤을때도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계층간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기에 사는 우리들.. 예전에는 그나마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졌다고 느껴지고 있다.

올라가는 집값, 물가..그리고, 오르지 않는 임금(최저임금은 오른다지만, 나는 체감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우리회사마저도 변경된 최저임금 기준을 어떻게든 맞추려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직원들을 회유했다.

우매한 직원들은 같은 반지하 사람들의 계략(?) 덕분에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임금을 받는것에 감사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전의 사다리가 지금은 동아줄 수준으로 바뀌었지만.(썩은 동아줄만은 아니길...)

어떻게든 다른길은 있을것이고, 그 길을 빠른 시일내 찾고 싶다.

(나만의 명언인 '언제나 다른길이 있다고 했어'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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